잡동사니

~지브리 미남 탐방기~ 0편. 미남이란 무엇인가.

육울ㅜㄷ 2020. 4. 10. 11:56

 

 

 

시작하기에 앞서 짧게나마 변명을 늘어놓고 싶다. 전에는 남성 혐오 열심히 하자면서 이제와서는 남자 착즙이나 하고 있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만 내게는 이 또한 앞서 다뤘던 것과 같은 남성혐오, 그 중에서도 남성 대상화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 남성이 대상화 되었는지는 차치한다.) 또한 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갈 수록, 전에 말한 고판돌(아가씨) 같은 캐릭터에 대한 착즙과,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미남 캐릭터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상이한 일인지에 대해 설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넷플릭스에 지브리 애니가 업로드 됐다. 아름다운 작화로 그려내는 판타지 풍 세계관 등 지브리 애니가 주는 즐거움은 다양하지만, 그 중 '미남'은 결코 뺴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개인적으로 반전이나 환경 문제 같은 당위적 모티프나, 미야자키가 페도인지에 대해서 따지는 건 별로인 것 같다... 그런거에 관심 있다면 유튜브 검색하면 나올 거 같음) 

 

지브리 미남은 왜 특별할까? 잘생겨서???

미남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의미 없는 부분이 미남이 잘생겼다는 점일 것이다. 미남이 잘생긴건 너무 당연하잖아요. 역전앞,,, 문화컬쳐,,, 같은 동의어 반복일 뿐이다. 게다가 지브리처럼 주인공 인물의 생김새가 유사한 그림체의 애니메이션에서 그냥 잘생겨서 특별하다고 하는 것은 그림체가 예쁘단 말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지브리 미남들이 그냥 잘생겨서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세밀하게 연출된 미남이다. 영화 내에서 외모 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어 그들을 미남으로 만들어낸다. 

미야자키가 고혈을 짜내(지는 않았겠지만) 만들어낸 미남들은 잘생겼다고 감탄만 하기엔 아깝다. 이만큼 잘 만들어진 미남은 어디가서 구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미남인지 살펴 보도록 하자.

 

 

아름다운,,, 개인지 늑대인지 용인지,,, 

 

 

 

 

 


 

 

0. 미남이란 무엇인가. 

 

당연한 말이겠지만, 보편적인 미의 기준 같은 것은 없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구린 예시를 들지 않아도 충분하다. 

원로 배우들의 리즈 시절과 현대의 대표적인 미남들을 비교해보자. 시대별로 미의 기준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막말로 장동건만 하더라도 2000년대 초반에는 대한민국 대표미남 어쩌구였지 않았는가...

 

 

           70년대 대표 미남 배우 신성일          내 눈에는 소년명수 같다

그래도 시대를 초월한 경향성이 있지 않았냐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뚜렷한 T존 같은 '남성적 특징' 따위들을 예시로 들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경향성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헛소리를 계속 해대니까 눈만 부리부리한 애들이 자기 잘생겼다 생각하는 부작용까지 생겨난다...) 따라서 큰 눈, 깨끗ㅋ한 피부 같은 조건들을 살펴보는 것은 소모적일 따름이다. 여기서 다루려는 것은 미남의 조건이 아니라 '미남이란 무엇인지'이다.

 

우리는 남성상이 미적 만족감을 주었을 때, 그 대상을 미남이라 판단한다. 미남 판단을 위해서는 판단의 주체와 대상 남성, 그리고 그들이 속한 사회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미적 판단도 사회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돈 잘 벌어오고 무뚝뚝한 남자가 인기 있던 과거와, '조신남'이 인기있는 현재의 미남상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어떤 남성을 잘생겼다고 판단하는 것은 시각을 통해 그의 외견의 조형적 미감을 판단하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흔히들 '목소리가 잘생겼다'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미남'을 일종의 아비투스로 보는 관점에서 이 시리즈를 시작하고자 한다. 아비투스 개념을 불러올 때, 부르디외가 사용한 계급적 맥락에서 벗어나는 것은 조심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미남'을 분석하는데 아비투스라는 개념의 포괄성(나쁘게 말하면 애매함)이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거칠게 정의하자면 아비투스란 사회를 통해 만들어진 습속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비투스의 개념에 관해 가장 완벽한 예시 중 하나는 바로 '얼굴값'일 것이다. 얼굴값은 예쁘(혹은 잘생겼)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습관, 취향, 가치관 등의 성향을 종합한 아주 모호한 말이다. 예쁜 애가 엽사를 프사로 해놓는다든가 뭐 그런 것들... 어찌되었건 얼굴값이란 말이 아주 모호할지라도 우리는 그  말을 들으면 어떤 의미인지 알아챌 수 있다. 우리가 '얼굴값'이란 말이 통용되는 사회 문화적 의미망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얼굴값이란 말은 대상의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드림콘서트에서 차은우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장내가 술렁이는 순간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이 상황에서 충분히 '차은우가 얼굴값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얼굴값이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은 그가 잘생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외모만으로 관중이 소란스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차은우가 얼굴값한다'는 문장의 주어가 차은우일지라도 '차은우가 얼굴값'하는 상황의 행위 주체는 (굳이 따지자면) 관객이다. 차은우가 얼굴값했다는 말은 그의 용모, 그리고 그를 잘생겼다고 판단할 사회문화적 배경, 관찰주체(관객), 드림콘서트라는 시공간적 상황, 관객의 술렁이는 행위 등을 종합적으로 지시한다.

얼굴값에 관한 문화적 의미망이 형성되어 있고, 그것이 어떠한 현상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을 얼굴값이라 부를 수 있다. 그 현상은 얼굴값의 지칭 대상인 '미인'이 어떠한 행위를 한 것일 수도 있고(위의 프사 예), 그를 둘러싼 타인의 행위일 수도 있으며(차은우의 예), 어쩌면 구체적 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현상이란게 행위에 한정되지 않으므로) 어떤 문화적 의미 구조에 기초해 나타나는 현상들과 그 의미망 자체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것이 아비투스이다. '한 남성이 미남이기 위해서는 그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배경, 그 남자의 용모, 그를 향한 주변인의 반응 등이 필수적이며, 이러한 것들은 특정한 개인으로부터 의도되었다기 보다는 어떤 의미 구조의 망 아래에서 형성되는 '습속'이며, 따라서 '미남'이라는 현상을 아비투스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미남이란 얼굴값하는 남자를 의미하며, 그에게는 미남이 받아 마땅할 사회적 반응이 따라온다. 

 

사실 실생활에서 남자 얼굴값이란 말은 부정적인 경우에 사용될 때가 적지 않다. 수많은 전직 남자 아이돌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추해졌는지랑 내 친구 ㅇㅇ의 얼굴값하는 남자친구가 원나잇을 하다 걸렸다더라... 쟤는 저렇게 생겼는데 왜 얼굴값 못하고 성매매를 하냐... 뭐 그런 예시들이다. 똑같은 쓰레기 짓을 하고도 얼굴은 잘생겼다는 욕을 들으니 미남이긴 한거지 뭐,,, 

우중충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이 시리즈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지브리의 미남들이니까. 한 영화사(한 감독)의 작품의 주연 남성이 이렇게 떼로 '미남'인 것은 가히 놀랄 만한 일이다. 남자 캐릭터가 잘생긴 설정은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가 적어도 예쁜 편으로 그려지는 반면 꽤나 희소하다. (이런 성별이분법적 비교가 바보같은 건 제가 잘 압니다) 특히 남성 주동인물이 미남으로 그려지는 일은 더더욱 흔치 않다. 있어도 '미남'이라는 설정이 서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베르세르크의 그리피스나 영화 캐치미이프유캔) 혹여 '여성향' 로맨스의 남주들은 다 미남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그런 장르 남성 캐릭터는 잘생긴게 디폴트라 얼굴값이란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튼 지브리(그리고 하야오)의 남캐들은 미남으로 그려진다.  그들이 미남이라는 사실은 서사적으로 수단화 되지 않는다. 그들이 잘생겼다는 것은 작품 내에서도 명백한 사실이며, 그림이 예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울이 '아름답지 않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며 절망에 빠지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얼굴값한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소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워낙 현실에 미남이 없기 때문에 미남의 얼굴값이 어떤 건지 모호한 편이다. 잘생긴 남자를 보면 일단 남자인데 잘생겼다는 사실을 신기해하고, 당황한 나머지 어버버하다가 끝끝내 그의 섹슈얼리티를 의심하게 되던데, 아마 대부분 그럴 것이라 믿는다...여하튼 이 시리즈는 '미남'을 지브리 애니에서 어떻게 그려내는지, 그들이 어떤식으로 얼굴값하는지 살펴보면서 그 희소함과 특수성, 현실과의 균열 및 통합 등을 살펴보는 과정이 될 것이다. 부디 내가 넷플리스 구독한 보람을 느낄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