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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민족의 공조 : 시민-민족주의 (2018 2학기 민족과 종족 기말 보고서)잡동사니 2020. 11. 19. 02:15
2018년 2학기 민족과 종족 기말보고서다. 분량 제한이 2페이지일 리가 없으니 급한 대로 써냈던게 분명하다.(항상 그랬지만...) 2018년 2학기 학점이 역대 최저던데 다 이유가 있었다.
현대 한국에서 민족주의라는 말이 사용되는 어조는 대개 부정적이다. 민족이라는 지나치게 애매한 번역어가 포함된 이 단어는 때로는 국민주의라는 말과 혼용되기도 한다. 민족이란 단어는 ‘한민족’, ‘겨레’ 등의 말로 대체되기도 한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았을 때 혈통주의적 문화공동체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 민족주의의 배타성이 민족이라는 단어의 경계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민족이라는 말을 통해 포섭되는 까레이스키, 조선족, 한인 교포 등은 그들의 초국적 입지나 이해관계에 따라 민족주의의 울타리 안팎 중 어디에 위치될지 결정된다.
한국 민족주의는 많은 경우 일제강점기를 통해 그 줄기를 형성했다고 판단된다.[1] 일제라는 명백한 타자의 침략이 단일한 정체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일제에 이어 간접통치나 냉전 시기의 ‘타의적’ 분단 경험은 민족의식의 분화 및 강화를 만들어냈다. 혈통, 문화를 공유하는 동시에 타국-그것도 적국인 북한과 여러 나라에 흩어진 ‘동포’ 들은 미필적 타자로서, 대한민국 국경 안의 주권적 민족을 만들어냈다. 현재 한국의 민족주의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주권을 경유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분단 이후 대한민국에 주어진 두 가지 숙명은 부강과 반외세였다. 두가지 숙명은 상충하는 지점이 있었으나, 외세를 몰아내고 자주성을 견지하는 것이 외세로부터 파생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민족주의 내부의 논리를 통해 동시적 지향점으로 자리잡았다.[2] 민족주의는 80년대까지 부국, 자강, 반체제 논리와 궤를 같이했으나, 군부 정권의 쇠퇴와 급격한 자본주의 발달 그리고 세계화를 경험한 90년대 중반 이후 상황은 변화한다. 국가주의 혹은 지배적 사회심리로 자리잡은 민족주의의 배타성이 세계화로 인해 ‘타자’와 만나 그 문제성을 드러낸 것이다. 탈북자, 재중교포, 외국인 노동자 혹은 혼혈인에 대한 차별은 배타적 민족주의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저항적 민족주의의 약화와 동시에 등장한 것은 비정치적 성격의 시민운동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시민운동은 과거의 민중운동과는 별개로, 혁명적 과업 보다는 국가 내부의 제도적 사안들에 집중했다. 시민운동의 개인주의, 자유주의적 성격은 일견 그것이 기존의 민족주의적 민중운동과는 분리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으나, 97년의 노동법 날치기 사건과 안기부법 반대 후 혼재된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정보통신의 발달은 세계화의 규모를 일상의 영역으로까지 확대시켰다. 이에 따라 민족주의와 그 비판 뿐 아니라 민족의 경계, 민족됨nationhood이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맹목적 민족주의는 ‘국뽕’이라 불리며 조롱이 되기도 한다.[3] 유튜브 등의 뉴미디어는 과거 인종, 문화, 언어 등이 만들어냈던 경계를, 소비하기 좋은 형태로 허물어 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대한민국 민족의 경계를 더 포섭적인 형태로 바꿨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것은 외국인, 혼혈, 교포 등으로 대상화된 타자로서, ‘한국인’과의 대비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체성이다. 그것이 전과 달리 친화적 형태의 공존이 가능해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민족이라는 경계에서 문화라는 요인의 배타성을 전과 달리 감소시켰다.
민족 경계짓기 수단으로서의 문화의 파급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은, 주권적 요소 다시 말해 사회 혹은 행위적 측면에서 시민적 정체성이 민족됨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시민이라는 개념을 민족의 하위적 요소로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민 개념은 그 자유주의적 기원에 의해 많은 경우 ‘민족’과는 대비되어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념 모두 근대국가의 주권에 기반한 개념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민족됨을 구성하는 정체성 중 일부가 시민됨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시위와 같은 대규모의 ‘시민’활동에서 국가, 혹은 국민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차용되는지는 흥미롭다. 해당 시위의 기원, 주도층, 성격 등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다소 논쟁적이다.[4] 혹자는 퇴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천주교 계열 시위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세월호 시위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기원에 대한 논쟁이 아니더라도, 노동운동, 여성운동적 성격이나, SNS의 효과 등 수많은 요인들은 이 결합적 시위를 구성해냈다. 시위는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림에 따라 해산되었고, 박근혜 퇴진 범국민 행동이라 이름 붙여졌다. 그러나 거대한 민족적 움직임은 단일한 형태로 상상되고 호명됨에 따라 내부의 권력구조, 크고 작은 욕망들을 일축해버렸다.
‘파란 눈의 태극전사’, ‘검은 피부의 한국인’과 같은 표현은 이제 낯설지 않다. ‘Do you know kimchi?’라는 표현이 조롱의 대상이 된 것도 최근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민족주의에서 문화적 배타성은 여전히 문제적이지만, 그에 대한 비판 의식 또한 만연하다. ‘민족’이 그러하듯 ‘민족주의’ 또한 문화나 인종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다. 한국에서 시민 개념이 자유주의적 맥락보다는 민족주의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에 대한 성찰은 현재의 정치 구조에 대한 유의미한 비판이 될 것이며 특히 소수자 정치에 있어서 그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1] 함규진, 「사회개혁의 배경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 한국철학논집, 2015.7, pp307-312
[2] 김동춘, 「시민운동과 민족, 민족주의」, 시민과세계, 2002.2, pp75-79
[3] 國 + (히로)뽕
[4] 권명숙, 「촛불의 운동정치와 87년 체제의 ‘이중 전환’」, 경제와 사회, 2018.3, pp7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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