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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들이 노출하고 꾸미는 이유
    2020. 8. 28. 18:59

     

     

     

     

    암튼 너 때문은 아님

     

     

     

     

     

     

     

     

     

     

     

     

     

     

     

     

     

     

     

     

     

     

    *이 글은 pc환경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건요약 

     

    해당 게시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여자들이 몸매 가꾸고 노출패션입고 화장하고 그러는" 이유는 "남자들시선보다 여자들 시선" 때문이다.

    2. 여자들의 동기는 여성 사회 내에서 "무시까"지는 경험을 피하고 "대접도 달라지고 내 가치가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 경험을 얻기 위한 것이다. 

     + 베플 2 (ㅇㅇ)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자존감"이라는 단어로 정리했다.

     ++ 베플 1(ㅇㅇ)에서는 이러한 '자존적' 경험이 남성이 상대일 경우보다 여성이 상대일 경우에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주장으로 게시글의 주장을 보충했다. 

     

    즉 게시글과 베플 1, 2는 '노출패션과 화장을 위시한 여성의 꾸밈은 남성들 시선 때문'이라는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한편, '찬반대결' 댓글은 여성의 꾸밈과 관련된 몇몇 현상들이 여중, 여고라는 남성 배제적 환경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해당 게시글과 베플 1,2의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남성'이라는 조건이 '꾸밈'을 강제하기 때문에 본문과 베플에서 제기한 '자존감'보다 우선시된다는 주장이다. 

     

     

    대법관 판결 

     

    해당 게시글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인 '찬반대결' 댓글 그리고 그들이 상정한 '여자들의 꾸밈은 남성을 위한 것이다'라는 명제 모두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할뿐더러 여성의 꾸밈 혹은 노출 동기의 우선순위에 대한 충분한 논증을 제시하지 못했으므로 충분한 설득력을 보이지 못하였으므로 다음과 같이 선고한다. 

     

     전원 유죄 

     

     


     

    당신은 오늘 식사를 했을 것이다.(아니라면 뭐라도 드세요)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 배가 고파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밥 때가 되어서? 식사 약속이 있어서? 먹고 싶은 게 있어서? 맛을 위해서? 무엇이든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밥을 왜 먹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밥을 먹는 이유는 상술한 것 이외에도 무궁무진하게 다양하다. 때로는 아주 특이한 이유일 수도 있고(푸드파이팅 같은 거), 적지 않은 경우 그 이유를 따지기가 민망할 정도로 관성적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한 가지 이유만으로 밥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오늘 배도 고프고, 냉장고에 남은 소바 장국을 먹어치우고 싶었기 때문에 식사를 했다. 이유들이 때로는 중첩되어 서로 구분되지 않기도 하다. 나는 단지 배가 고팠던 것일까? 아니면 혈중 당 농도가 떨어졌던 것일까? 어찌 되었건 행동(밥 먹기)의 이면에는 의문시되지 않는 배경들이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모든 행동이 이러할 것이다. 여자들이 노출하고 꾸미는 이유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저 주장들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틀린 얘기도 아니다. '여자들이 노출하고 꾸미는 이유는 남자들 때문이다'라는 남성 중심적 주장이 껄끄러운 나머지 '그게 아니라 여자들 시선 때문'이라고 한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중, 여고의 예시를 들어 남성이라는 조건이 '꾸밈'이라는 행위를 강화하거나 강제한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는 주장 모두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심지어 '여자들이 노출하고 꾸미는 이유는 남자들 때문이다'라는 주장마저도 일리가 있다. 재미있는 지점은 이러한 주장들이 끝끝내 서로를 배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격적인 어휘 때문에 각 주장들이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본문에서는 "남자들시선 보다"라며 남자들 시선 또한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찬반대결' 댓글 또한 여중, 여고에서 꾸밈과 관련한 일련의 현상들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한편, 그것이 아닌 다른 동기의 꾸밈이나 노출의 가능성(이를테면 본문의 '자존감'을 동기 삼은 꾸밈)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성'이라는 조건이 꾸밈에 관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점을 주장하지는 못한다. '여자들이 노출하고 꾸미는 이유는 남자들 때문이다' 또한 다른 동기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한다. 정리하자면 위 주장들 모두 '여자들이 노출하고 꾸미는 이유'가 여러가지란 것을 미필적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특정 동기가 다른 동기에 비해 우세하다거나 절대적이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그렇다면 틀린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을 아닌척 싸우게 만든 것일까? 근거 없는 주장을 하지도 않고 서로를 논박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단 한가지, 싸우려고 하는 그들의 태도다. 속된 말로 '첨예한 남녀 갈등'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첨예한 남녀갈등'이라는 기만적인 어휘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듯이 위 논증은 가볍기 그지없다. 나이브하게 말하자면 싸우고 싶어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저런 이야기, 혹은 싸움이 재미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부정하고 싶다면 유튜브 가서 '남자'나 '여자'라고만 검색해도 저런 이야기로 조회수를 버는 채널이 떼거리로 나올 것이다. 특정 성별 대표가 되어서 이쪽 입장은 어떻다고 대변하든, 상대방의 주장이 아집이라며 토를 달든, 잘 모르겠다며 수긍하고 넘어가든 상관없이 이런 이야기들은 놀랍도록 재미있고 믿을 수 없이 공허하다. (혹시라도 오해를 살까봐 덧붙이는데 젠더 관련 논쟁 일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여자들이 노출하고 꾸미는 이유'에 답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답을 들어도 석연치 않을 것이다.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답은 아마 '그러고 싶어서',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정도겠지.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는 순환구조형 대답만이 쓸데없는 반론을 원천 봉쇄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이 공허하게 멤도는 것이 안타까운 이유는 이 이야기들이 놀랍도록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발끈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입방아 찧는데만 사용하다니, 최고급 원목을 갈아 합판을 만드는 것을 보는듯한 안타까움이다. 초등학교에서 낙태를 주제로 찬성 반대 나눠서 하나마나한 이야기 나누는 가짜 토론이랑 다를게 무엇일지 모르겠다. 

     

     

    '여자들이 노출하고 꾸미는 이유'에 관심이 있지만 뻔한 논쟁이 싫다면 답은 하나 뿐이다. 말로 안되면 몸으로 부딪히는 법이다. 직접 해보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자신이 납득할 수 없었던 이유를 담아 옷을 입거나 노출을 하거나 꾸며보자.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서 입어보고, 동성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꾸며보고, 어쩌면 단지 덥다는 이유로 노출해 볼 수도 있겠다. 평소와 다르게 자신을 꾸며보고, 거기에 특별한 의도나 의미를 담아보고, 밖에 나가보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자신의 착장에 대해 스스로가 어떤 식으로 의미를 부여해 왔는지, 그것이 타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차마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기회가 될 것이다.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옷이 너무 부담스러우면 당근 마켓에 팔아버리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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