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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집>(2019) 4d로 본 썰
    2020. 12. 13. 06:41

    요새 아이들의 경험 세계가 전보다 훨씬 축소되었다는 사실은 꽤나 자명한 것 같다. 스마트폰은 그 만능성으로 인해 다른 경험의 가능성을 일축해버렸다. 거기에 코로나라는 조건까지 더해진 결과, 올해 고등학생이 된 내 동생은 안방 침대에 누워 유튜브나 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게도 음악이라는 새로운 취미(혹은 도피처)가 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그 아이가 천편일률적인 경험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따라서 일년에 한두 번 가던 가족여행의 추억이 내 동생에게 강렬한 행복의 기억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작년이었던가? 도배일로 바쁜 엄마를 보채 새벽 3시(아마)에 떠난 여름 동해 바닷가 여행 이후로는 틈만 나면 여행을 가자고 엄마를 들들 볶았다. 항상 바빠 막내 아이를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하던 엄마는 그 요청들을 가능한 들어주려 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음) 하지만 당연하게도 일 때문에 바빠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아이는 10월이 되자 마자 가을 단풍을 보러 강원도 산에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지만 일정은 미뤄지고 미뤄져 확정된 날짜는 11월 중반이었다. 단풍은 이미 다 졌을 무렵이었지만, 오랫동안 기다려온 여행은 그 녀석을 한껏 기대감으로 부풀려 놓았다. 

     

    바쁜 엄마와 여행을 기다려온 어린 아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따라온 딸은 새벽같이 일어나 강원도를 향해 떠났다. 졸음을 쫓기 위해 끝말잇기를 하거나, 가족들 걱정(or욕)도 하면서 새벽 고속도로를 달려 나갔다. 잠깐 들른 휴게소에서 떠나기 직전에 엄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전화 넘어 들려온 중년 여성(과장님)의 목소리는 오늘 작업 나가는 거 아니었냐며 엄마를 추궁했고, 엄마는 그 건은 다른 사람이 가기로 어제 정리했던 일 아니냐며 반문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알 수없지만, 작업 하나가 펑크 나게 된 상황이었다. 내일로 일정을 미뤄보거나, 대타를 구하거나, 하다못해 오늘 밤 작업은 어떻냐는 대안들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펑크 난 작업 스케줄 때문에 한껏 뾰족해진 엄마와 과장의 목소리는 가을 여행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내 동생의 거대한 기대감 풍선을 마구 찔렀고, 다음 신호에서 우회전하면 목적지 주변이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이 나오는 바로 그 순간-풍선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기대하던 가족과의 여행길에서 엄마는 계속 일 전화만 받고있는데다 그 내용이 어쩌면 당장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단 거라니. 서운함인지 서러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은 눈물이 되어 흘렀다. 엄마는 엄마대로 미안함과, 과장에 대한 짜증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동생은 점점 스스로의 불행감에 도취되려 했고, 나는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전환해보고자 아무 말이나 지껄여댔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영화 <우리 집>이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랑 정말 똑같은 내용의 영화가 있다는 내 설명에 엄마와 동생 모두 흥미를 보였다. 오늘 재미있게 놀고 나중에 함께 그 영화를 보자는 약속은 조금이나마 분위기 전환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엄마 일은 어떻게든 정리가 되었던 것 같다. 비록 그 후에도 업무전화는 계속 걸려왔지만 어찌되었건 그 날 여행은 우리 세 사람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 후 한 달 정도 지나서 아빠가 지방 출장으로 집을 비웠던 오후 11시 반, 막 퇴근한 엄마는 그 영화를 보자며 우리를 거실로 불러냈다. 동생은 졸려했고 나도 할 일이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보기 힘들 것 같고 우리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 툴툴거리면서도 영화를 틀었다. 영화 초반 엄마는 업무 카톡으로 스마트폰을 만지다 이게 무슨 내용이냐며 맨 앞으로 되감아 달라했다.(몇 분 안 봐서 그냥 그렇게 함) 그 후에도 카톡 알람은 계속되었고 엄마 입장에서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카톡 알람 소리와 이모티콘 소리는 텔레비전 소리를 종종 방해했다.(나는 이모티콘에서 소리가 난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우리 집>의 내용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미어지게 했다.(나는 반 아이들에게 <우리들>을 보여준 내 동생의 전 담임이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행히 두 번째 보는 거였지만 이 영화를 처음 보는 내 동생은 도중에 화장실로 도망가기까지 했다. 따뜻하고 마음 아픈 결말에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손을 맞잡았고, 졸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영화 내용에 몸부림치던 우리와 달리 엄마는 시종일관 무덤덤했고 졸고있기까지 했으니 정말 영화를 보긴 한 건지 의심이 들었다. 물론 엄마가 잘못한 것은 없다. 일이 바쁘면 여행 일정이 미뤄지거나 (심지어는 여행 도중에도) 취소될 수도 있고 함께 영화를 보다 졸거나 어쩌면, 이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불안하고 또 무력하다. 열심히 밥을 차려 온 가족이 같이 먹게 하거나, 앙상한 겨울산에서 단풍놀이를 즐기는 것으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가슴 아픔에 눈물 흘렸고, 엄마도 우리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졸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다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농담반 진담 반 그녀를 타박했고, 그녀는 갑자기 자신을 몰아세우는 아이들에게 억울함을 느꼈다.  그렇게 새벽 1시에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서로에게 서운함과 미안함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토로하며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우리 집>을 보면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픈 이유는 이 내용이 누구나 경험했을 어린 시절 특유의 무력한 슬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슬픔이라며 낭만화하거나 원래 다 그런거라며 모른 채 하는 것만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졸고 있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낀 것은 나와 동생 둘 다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 애보다 잘 안다. 새벽같이 출근해 하루 종일 몸 쓰는 일을 하고 몇 시간 눈 붙이다 다시 출근하는 엄마가 졸더라도 같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아무리 보고 싶은 영화였어도 깜빡 졸게 되는 피곤함을. 그렇기에 다소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나는 그녀가 졸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마 아직은 어린 내 동생은 그걸 모를 것이다. ㅋㅋ...(얜 진심으로 서운해하더라고, 엄마 보고 졸고 폰 만진 거 사과하라길래 중재하느라 진땀뻄;;) 미안하다 동생아 누나가 그 고통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누나는 너보다는 좀 컸어,,, 그리고 여전히 내 코가 석자라서 뭘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단다... 아플 땐 아파야지 뭘 어쩌겠니? 때로는 바닷가의 텐트든 화장실이든 도망가서 잠시나마 슬픔을 잊을 수 있다면 다행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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