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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x에서 살아남기 -1글 2019. 10. 31. 01:19
DEAN - instagram
자이언티는 이렇게 말했다. "플렉스 시대일수록 비 험블해야 하는 거 아시죠"
(나는 웃기려고 올린거지만) 그의 말은 현재의 어떤 시대정신을 대변한다.
온몸으로 구찌라고 외치고 있다. SNS, 그중에서도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한 돈 자랑은 이제는 낯설지 않다. 모 아이돌 금수저 논란, 어쩌고 래퍼의 롤렉스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통장 인증 등 돈 자랑과 그에 대한 반응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유튜브를 켜면 하루가 멀다 하고 명품 몇 천만원어치 하울 영상이 올라온다.
돈 자랑이 아니더라도 flex하는 태도는 넘쳐난다. 어디 가서 먹은 맛있는 것, 지난 주말 놀러간 무슨 여행, 내가 다니는 뭐뫄뫄 대학, 이번에 본 어쩌고 저쩌고... 그게 돈이 아닐 뿐이지 자랑질은 끊이지 않는다. yolo라는 말은 이제는 수명을 다했지만 그 말로 표현됐던 행위들은 계속된다. 계속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자랑한다.
과거, 가족과 같은 소규모 오프라인 공동체에서는 굳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무슨 경험을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가족 구성원들은 그런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으로서, 인터넷을 경유해서, 모르는 사람들 혹은 아는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관종이란 말은 더 이상 욕이 아니다. 타인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욕망과 그 능력은 이 시대의 미덕이다. sns는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장소다. 자랑질이라고 위에서 매도했던 것들은 사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남들에게 표현하는 일종의 자기소개서-포트폴리오였던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좋은 모습들을 포착해내고 가공해서 남들에게 보여준다.
대체 누가 자기소개서를 사실대로만 쓰나요? 그러니 SNS는 거짓될 수 밖에 없으니까 현혹되지 말고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할 타이밍인데, 그런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SNS는 진짜라고요. 금수저라고 욕하고 다 포토샵 되어있다며 욕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사람들은 돈이 많고 엄청 마르고 예쁘고 친구가 많으며,,, 음 어쨌든 그렇다.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말은 그렇기에 너무나도 공허하다. 대체 예쁜 구석이 뭐가 있다고 나를 사랑해? 있어도 괜히 사랑하지말고... 아, 그냥 좀 사랑받지 마세요.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피처폰으로 바꾸고 혼자 하는 취미를 찾아보는 걸 추천합니다.)
한서희는 금수저고 예쁘고 셀럽이고 마약도 했고 정다은이랑 사귀기까지 한다... 이거 다 진짜라고
그런데 나는 이거 하나 묻고 싶다.
Q. 정말로 자랑질이 멋진가요?
'나는 예뻐요', '나는 돈이 많아요', '무심한 듯 툭하고 걸쳤지만 아시다시피 이거 명품이에요' '난 행복하답니다.'
말로는 하지 않지만 사진을 보면 들린다. 어떨 때는 쇼핑을 구실 삼고 어떨 때는 여행을 구실 삼지만 결국 하는 얘기는 자기 잘났다는 얘기라 비슷하다. 인스타 피드를 일관되게 꾸밀 수 있는 이유는 일관되게 자기 자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 척, 마치 그것이 자신의 자연스러운 일상인 척 해봤자 우리는 안다. 그 사진과 그 사진에 찍힌 것이 instagramable하기 때문에 업로드되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뭐 대단한 것을 올렸나? 여행이야 나도 언젠가 가면 되는 거고, 명품이야 돈만 많으면 살 수 있는 거잖아. 자꾸 저렇게 허영된 것들만 올려서 다른 사람들 주눅 들게 하고, 자기만 잘나면 다야?
A. 네, 그렇습니다. 자랑질이 정말 멋지고 저도 좀 하고 싶네요.
헤헤 그렇습니다. 저도 가능하다면 부자 부모 아래서 7개국어 자유 구사 가능한 170cm 43kg의 과즙상 여신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네요. 내 삶은 외롭고 공허하다며 벤틀리 핸들을 내리치며 울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걸 인스타 라이브로 전세계에 보여주고 싶다고요.
문제는 저 뻔히 보이는 자랑질이 진짜로 멋있고 근사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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